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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 실마리 나왔다. - 조선 조정 심흥택 울릉 군수는 왜? 일본 조사단에 독도가 조선 영토라 말하…
  • 기사등록 2023-06-13 2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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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1905년 심흥택(沈 興澤) 울릉 군수...일에 독도 환경조사 허용 왜?

심흥택은 왜? 일본 조사단에 독도가 조선 영토라 말하지 못했을까?

러일전쟁 직후 일본 독도 환경 조사단 대거 파견...독도환경 조사

오쿠하라 일기「죽도는 울릉도...심흥택, 물개 선물 받고 흐뭇!


▲ 본지 객원 논설 김문길(한일문화연구소장) 박사


본지 객원 논설 김문길(78, 한일문화연구소장) 박사가 일본 강제노역 영천지역 피해자 유족을 찾아 나선 가운데 이번에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고 독도를 일본에 정식 편입시킨 일본 측 자료를 발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발견 문서1, 2)


김 박사가 이 문서를 발견한 시점은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불과 몇 주 전인 2018년 12월이다. 장소는 일본 시마네현 죽도 자료관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현지 현황파악을 다 마치지 못하다가 지난해 6월 해외 출입이 완화되면서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발견한 문서를 정밀 해독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편집자 주)


러일전쟁이 1905년 5월 27일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일본 각처에서 전쟁승리 축하 모임이 열풍을 이뤘다. 일본 전역에 조성된 전쟁승리 비문이 증명해 준다. 특히 시마네현, 돗토리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은 전쟁 직후 1906년 3월 16일 서제 162호(문서1)로 승리 축하 모임을 소집하고 다케시마(독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논의한 문서다.


▲ (문서1) 독도 침탈을 기념하고 시마네현을 중심으로 독도를 방문해 독도의 일본 편입을 위한 기초자료조사를 하러 가자며 4개 현을 소집한 문서(김문길 박사 제공)


김 박사가 분석한 서제 162호에는「본 월 제146호에 4현 합동 개선 축하 만찬회에 현 청장들이 올 수 있는지 통보했고, 각 현 청장은 다케시마의 운영을 의논해야 하니 히로시마 야마구치현 청장은 꼭 참석 하도록 초치」한 것.


서제 162호는 명치 39년 3월 12일 제1 부장 사무관 후지모토 아츠 야스(藤本充安)가 이 오끼도사(隱岐島司) 히가시 분스케(東文輔) 앞으로 보낸 공식 소집 문서다. 즉, 시마네현이 오끼섬장에게 보낸 것이다.


이 문서에서 일본(명치정부)은 다케시마(독도)를 빼앗았으니 담당 4개의 현 청장들은 모여서 축하연을 열자. 그리고 시마네현에서 독도에 방문해 독도 현황을 조사하자는 의견을 담고있다.?실제 조사단을 파견해 조사했다.


소위 말하는 다케시마를 빼앗았다는 것을 4현에 통지하고, 야마구치현과 히로시마는 꼭 참석해야 하니 반드시 확인하라는 독촉서다. 엄연히 조선의 울릉 군수가 존재하고 있는데 러일전쟁 직후 임자 없는 땅이라 우기며 독도를 빼앗고 탈취 연회를 열고 또 독도를 방문해 조사할 계획까지 세웠다.


일본 전 열도에서 당시 러일전쟁 승리의 축가를 부를 때 시마네현 중심으로 독도 탈취 축하 만찬회를 열고 독도의 지질과 규모, 서식현황 및 해양환경 등을 조사를 하자는 소위 말하는 독도 침탈야욕 준비 문서로 김 박사는 해석하고 있다.


러일전쟁 후 일본 관료들이 다케시마(죽도, 독도)의 첫 방문 단장은 간니시(神西) 시마네현청 부장 외 수십 명이다. 해산물, 거리 기후, 면적, 토양 및 주변 환경까지 각 분야 전공 담당자를 데리고 긴밀하게 조사했다. 당시 일본의 향토사학자의 오쿠하라의 일기 「죽도도는 울릉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문서2)


▲ 명치 39년 3월 12일 울릉도(독도) 조사를 위한 일본 방문 조사단이 수일간 각자의 조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방문기를 썼다.고 기록한 오쿠하라 일본 향토사학자의 일기 「죽도도는 울릉도」 (김문길 박사 제공)


오쿠하라의「죽도도는 울릉도」를 번역하면 이날 오전 10시 간니시(神西) 부장 이하 수십 명은 울릉도 군수를 방문했다. 울릉도에는 당시 심흥택(沈 興澤)이 조선 정부의 울릉 군수로 있었다. 예의를 갖추어 비서를 거쳐 군수를 만났다고 기록했다.


심흥택(沈 興澤)은 경성(지금의 서울) 사람으로 당시 52세다. 조선 관료 복을 입고 위풍스러운 모습으로 방석 위에 앉아 간니시(神西) 부장 방문단을 응접했다.


방문단은 죽도 (독도)에서 잡은 물개 한 마리를 선물하자 심흥택은 "원거리에 온 것에 감사하다"며 반겼다. 이들은 죽도(독도) 행정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준비했으나 심흥택은 의도적으로 답변을 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간니시(神西) 부장의 질문에 심흥택은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쿠하라의 일기 「죽도도는 울릉도」에는 일본 방문 조사단은 수일간 각자의 조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방문기를 썼다.고 수록되어 있다,


오쿠하라의 일기에는 심흥택이 간니시(神西) 부장으로부터 물개를 선물 받고 상당히 좋아하는 기분을 나타냈다고도 적었다.


김문길 박사는 이번 발견 문서를 분석하고 당시 심흥택(沈 興澤) 울릉 군수가 일본 방문단이 왔을 때 독도가 조선 영토란 것을 왜 말 못 했을까? 왜 독도에서 잡은 물개를 선물로 받았을까?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해 지금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를 김 박사는 당시 조선 조정의 심흥택(沈 興澤) 울릉 군수가 조선 영토의 권리를 훼손했다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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