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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숨겨진 관동대지진 진실...아오야마 학생 617명의 지진기록 '진재기'(震災記)' - 지진⇒유언비어 확산, 日-조선인 학살 만행...그러나 학생들은 "유언비어 사…
  • 기사등록 2023-09-17 20:17:54
  • 수정 2023-09-17 2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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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100년간 숨겨진 관동대지진 진실...

아오야마 학생 617명의 지진기록 '진재기'(震災記)'

지진⇒유언비어 확산, 日-조선인 학살 만행

진재기⇒"유언비어 사실 아냐" 조선인 보호

민간 차원⇒학살 실태 파악, 日에 사죄 요구

日⇒"사실관계 기록 발견못했다." 100년 침묵

617명의 학생 육필 9월 1일의 진실⇒'진재기'(震災記)'

김문길, “학문적 한·일 역사...”정쟁 말아야”


<본 기사는 부산 외대 명예교수 김문길(한일문화연구소장) 박사가 일본 속에서 발굴한 관동대지진 관련 친필 기록 자료로 김 박사의 설명을 정리한 글이다. 관동지진 약 한 달 후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12~16세 617명의 학생이 9월 1일 당시 지진으로 폐허가 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은 일기문을 모은 1천 200쪽 분량의 14책 '진재기'에 대한 이야기다. '진재기(震災記)'는 지진을 기록했다는 의미다. [정리⇒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편집자 주>


▲ `진재기`(震災記)` 표지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박사 제공)


일본 관동대지진은 지방의 이름을 따 일본에서는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로 부른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발생한 규모 7.9의 지진이다.


당시 이 지역 지진을 중심으로 일본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일본은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군·경과 민간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 지진으로 전체 약 10만 명 이상 인명피해가 났다. 그로부터 29년 후 1952.12.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조선인 학살 희생자를 수집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가 기록원에는 251명(3.1운동 피살자 38명 제외)의 사망자 명단이 보관돼 있다. 당시 독립신문은 6661명으로 보도했다.


지진 사망자의 대부분이 화재로 사망했다. 지진은 9월 1일 정오에 발생했고, 때마침 점심때 불을 사용하는 시간대다. 대부분 다닥다닥 붙어있는 목재건물은 화재 광풍으로 바뀌었다. 설상가상 지진 전날인 8월 31일 규슈 지방에 태풍이 상륙했고 이로 인해 관동 지방에는 거센 남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목재 화염은 거센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거대 불기둥으로 변해 도시 전체를 휩쓸면서 피해가 늘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민간 차원에서 그 실태 파악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일본 정부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핑계로 진상파악과 사죄는 물론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100년 전 10월로 돌아가 본다. 1923.9.1 관동대지진 발생으로부터 한 달 후다. 당시 도쿄는 지진으로 도시 자체가 아비규환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도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학생도 임시 교실을 사용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관동대지진 '9월 1일 그날의 상황'에 대해 보고 느낀 대로 일기를 쓰도록 했다. 학생들의 친필 일기는 1200쪽 분량 14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지진에 대한 기록의 의미로 '진재기(震災記)'로 이름 지었다. 중등부 1학년~5학년, 12세~16세까지 전교생의 약 80%인 617명이 쓴 현장 기록이다.


당시 12세부터 16세 나이는 이성적 판단을 할 줄 아는 시기다. 꾸밈없는 순수한 청소년들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이 자료는 현재 창학 120년 역사를 가진 일본 유명 아오야마 대학 사료실에 보관돼 있다. 이 진재기는 김문길 박사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100년 전 10대 학생의 눈에 비친 9월 1일의 광동대지진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고 있다.


10대 학생 617명의 친필 진재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이 문서는 `진재기`가 아닌 계엄령 공문서다. 지진 발생 닷새 후 9월 6일 관동 계엄사령부에서 조선인 살해 명령을 내린 문서로 6개 항의 지시를 내렸다. ①불은 조선인 방화·강도·강간·우물 독약 살포자, ②유언비어 퍼뜨린 자, ③자경대를 폭행하는 자, ④절도자, ⑤사회주의 행동자, ⑥군사 방해자 등은 연행해 살해하라는 내용이다. (①의 불은=천황(구가)에 순응하지 않는) (해석=김문길 박사)


지진 하루 전날인 8월 31일 큐수 지방에 태풍이 상륙하면서 관동 지방에도 거센 강풍이 불었다. 목재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점심시간이 됐다.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지진이 발생한다. 불티가 온 사방으로 티면서 강풍에 도시는 삽시간에 불기둥으로 휩싸였다. 도시는 아비규환이었고 일 정부는 패닉에 빠졌다. 이때 조선인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나중이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니었다.=진재기 중) 9월 2일 日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동원된 6만4000명의 군이 경찰력과 치안에 나선다. 동시에 조선인 유언비어가 확산하면서 무고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됐다.


군·경이 조선인을 연행하고 무차별 학살하자 日 민중에서도 자경단(自警團)을 만들어 조선인 학살에 가담했다. 검문소를 설치해 조선인 색출에 나서면서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체포해 잔인하게 죽였다. 日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했다.


한편 '진재기'를 쓰도록 한 아오야마와 학교는 달랐다. 지진 후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조선인을 살해하자 학교는 조선인 구제단을 만들어 숨겼다. 1차 24명, 2차 40명 등 100명이 넘는 조선인을 보호했다.'라는 기록이다. 학교 학생신문에서다.


일본이 계엄령과 자경대를 조직해 당시 조선인 입국을 차단하고 일본 내에 있는 조선인에 대해 '독(일본) 안에 든 쥐(조선인)잡기'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 아오야마 학교는 '구제단'을 조직해 조선인에게 피안 처가 되었다. 심지어 야간에는 '야경대'까지 조직해 조선인 보호를 위한 보초를 서기도 했다.


심지어 김문길 박사는 "계엄령 선포로 日 방위청은 입국관리인에게 조선인과 중국인을 단 한 명이라도 입국시키지 말라고 명령한 후 권총으로 조선인을 사살했다"라는 기록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김문길 박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 학살에는 평소 日 정부가 앞선 3.1운동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 있었고, 지진에 따른 유언비어 확산으로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잡아다 죽였는데 이는 3.1운동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라는 설명이다.


당시 조선인 유언비어 내용은 지진 다음 날부터 "조선인 3천 명이 화약고를 습격하러 온다. 불을 지른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조선인에 대한 혐오성 유언비어다.


▲ ˝조선인 3천명이 화약고를 습격하기 위해 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나 진재기에는 조선인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진재기`(震災記)` 중에서)


'진재기'에는 ①『매구로目黑路에서 어떤 여자 한 아이가 허겁지겁 달려와 방화하기 위해 조선인 3000명이 온다. 군·경과 자경단이 빽빽이 감시하고 있었다. 무섭게 무장한 군인들이다. 사무라이 복을 입은 듯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조선인들이 아녔다. 그때 소동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②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뿌리기 위해 온다고 떠들어 댔지만, 조선인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③『대지진 때 조선인을 감금 폭행 학살이 행해 졌다.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이다.』


④『조선인이라고 몽둥이로 죽도록 때리고 폭행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가혹한 야만인 짓이었다. 그런데 죽이고 보니 일본인이었다.』


⑤『가는 곳마다 시체가 많았다. 악취가 나고 군데군데 쌓인 시체를 일본인들이 묻기도 하고 처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⑥『경찰 중에서도 조선인을 돌보는 양심가도 있었다.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을 숨기지 말고 내놓으라 할 때 "경찰로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라며 끝까지 조선인을 숨겨 주기도 했다.』라는 등 실로 다양하게 친필로 기록했다.


▲ 김문길 박사=계명대 졸업, 일본 교토대학 연구, 일본 국립 고베대학 학술학·철학 박사, 일본 문부성 초빙교수, 부산 외대 교수 퇴직·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


이번 관동대지진 '진재기'는 김문길 박사가 지난 2021년 초 아오야마 대학 총장 초청으로부터 자신의 일본어 번역서 『津田과 朝鮮』(츠다센과 조선) 강연을 하면서 발견했다.


김 박사는 강연을 마치고 총장의 안내로 교내 견학을 하다가 우연이 아오야마학부 학생신문을 보게 됐고, 이어서 작은 자료실에서 '진재기'를 발견해 지난 9월 1일 관동대지진 100년에 즈음해 세상에 알려졌다. (영천투데이 8월 31일, 9월 6일 자 보도)


김문길 박사는 "이같이 학자가 연구하고 발견한 한·일 역사를 반일로 매도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로 해석해 정쟁으로 삼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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