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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떠나는 역사·문화 여행』⑤...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인간 박정희" - 고성국, 이장호 감독이 말하는 대한민국...이제 박정희의 초라한 뒷모습까…
  • 기사등록 2023-11-11 22:13:58
  • 수정 2023-11-12 18: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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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특강) 『박정희 대통령과 떠나는 역사·문화 여행』⑤...고성국 정치평론가의 "인간 박정희"

박정희의 당당한 앞면과 초라한 뒷모습

이제 그의 초라한 뒷모습까지도 껴안자!

고성국, 이장호 감독이 말하는 대한민국


▲ 11일 구미시 박정희역사자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과 떠나는 역사·문화 여행』 특강 (사진/장지수 기자)


"박정희 대통령의 형 박상희는 소문난 공산주의자다. 그는 조선공산당(남로당) 창시자 박헌영의 신임을 받았고 훨신한 키에 언변도 달인이다. 광복 후 남로당이 가장 큰 세력의 정치 집단으로 자리 잡았을 때 10대 청년 박정희는 자연스레 형을 존경하고 따르면서 셋째 형인 박상희를 본보기로 삼았다."라며 박 대통령의 뒷모습을 공개했다.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간 박정희의 당당한 앞모습과는 반대로 이제 우리는 그의 초라한 뒷모습까지 함께 이해하고 함께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박정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가 11일 구미시 박정희역사자료관(관장 정명자)에서 가진 『박정희 대통령과 떠나는 역사·문화 여행』 명사 초청 특강 자리에서 한 말이다.


고 박사는 이날 "그동안 종북 주사파들이 박정희를 끊임없이 친일파, 매국노로 공격해 온 데 대해 자유 우파들은 이를 방어하느라 박정희의 앞모습만 복원해 오는 데 그쳤다"라고 밝히고 "이제 우리가 인간 박정희의 당당한 앞모습과 동시에 그의 초라한 뒷모습까지 함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박정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간 박정희'에 대한 고 박사의 이날 강의는 자유호국단(단장 오상종)이 주관한 초청 특강 다섯 번째 순서로 정명자 박정희역사자료관 관장을 비롯해 김영식(구미을) 국회의원, 윤종호 도의원, 김근한·소진협·장미경 시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앞서 박정희역사자료관은 지난 7월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떠나는 역사·문화 여행』 명사 초청 특강을 실시해 ①좌승희 박정희재단 원장 ②도태우 변호사 ③이제봉 울산대학교 대학원 교수 ④김용학 팬앤드마이크 대기자 ⑤고성국 박사로 이어져 왔다.


이날 특강에서 고 박사는 "이제 초라한 박정희의 뒷모습까지도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우리 국민들이 당당하고 성숙해졌다"라면서 "박정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반면 그의 뒷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더는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고성국 박사가 이날 특강에서 밝힌 박정희에 대한 뒷모습은 이장호(李長鎬·78) 영화감독이 말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대로다. 고 박사의 특강을 살펴보면….


▲ 11일 구미시 박정희역사자료관에서 ˝인간 박정희˝ 에 대한 흑역사를 설명하는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사진/장지수 기자)


【박정희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날 때부터 예상도 못 한 임신으로 어머니가 양잿물을 마실 정도로 지워버리려 하면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목숨 걸고 살아남았다. 태어나서도 먹지 못해 왜소한 데다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을 따르는 셋째 형 박상희를 롤모델로 삼았다.


당시 대구에서 박상희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셋째 형은 유명했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남로당(1925년 소련의 승인하에 박헌영이 만든 조선공산당 조직인 조선노동당)이 활개를 치다 1946년 5월 '정판사 위패사건'으로 남로당이 불법 단체로 규정되면서 박헌영은 북한으로 도망가게 된다.


이 전만 해도 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 참여, 신탁통치 찬성 등으로 미군정과 대화하며 각을 세우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이승만은 사사건건 미군정과 대립했던 시기다. 위패 사건이 터지면서 남로당(박헌영)은 북으로 도망가고 미군정과 전면전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1946년 10월 1일 남로당이 첫 번째 '대구 무장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고 사회·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때 목숨 걸고 공적 인간으로 죽은 셋째 형이 소년(청년) 박정희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의미에서 박정희의 흑역사가 시작된 만큼 이후 초등학교 선생님에서 군인의 길로 그리고 국가 경영자가 된 후 더욱 강해져 자기 목숨을 건 사명(使命)으로 삼은 박정희에 대한 명·암을 우리는 바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고박사의 박정희 관은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을 만든 이장호(李長鎬·78) 감독과 다르지 않다. (하보우의 의미=하느님이 보우하사 준말, 이장호 감독 설명)


▲ 2022년 락스퍼국제영화제 포스트 앞에 선 이장호(李長鎬·78) (사진 출처/조선일보 [송의달 LIVE] )


이 감독은 지난 8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逝去)한 다음 날 새벽에 아버지가 ‘만세’를 외칠 정도로 집안 전체가 박정희 대통령에 한(恨)이 맺힌 게 많았다”라면서도 "세월이 흐른 이제는 후회하고 있다"라고 했다.


지금 그는 박정희와 이승만에 대해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일으켜 세워주신 나라다,"라며 과거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확고하게 접었다.


그리고 그는 "이승만과 박정희(朴正熙) 두 분 대통령은 (하느님이 선택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지켰기 때문이라는 게 이 감독의 당찬 답변이다.


이 감독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용서도 빌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내면(內面) 깊숙이 받아들인 분으로 박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을 조국 독립과 건국에 자신들의 목숨을 건 사명(使命)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분은 초심(初心)대로 인생을 끝까지 마친 진정한 위인(偉人)이시며, 지금 정치인들에겐 없거나 부족한 부분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 감독은 “박정희 대통령께 불손하게 생각한 것을 사과드린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박 대통령께 불손(不遜)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잘못했습니다. 사과(謝過·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저는 대항할 만한 철학도 없으면서 그 사실을 빨리 고백하지 못하고 삐뚤게 살아온 데 대한 후회가 많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처럼 올바른 국가 의식과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이에요."라며 끝을 흐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선 “딱 ‘적절한 시기’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하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이을 수 있다는 조짐이 보여요. 김영삼 이후 대통령들은 자유에 대한 확신이나 북한에 대한 단호함이 없었어요. 정치적 테크닉(technique)만 습득한 이들과 윤 대통령은 크게 달라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 길’만 제대로 열어줘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하나님이 선택한 대통령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건국부터 역사와 역사관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라는 이장호 감독은 “최근 수년 동안 종북(從北) 세력이 (나라를) 어둡게 해놓은 (일들을) 걷어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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