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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사람] 記者가 발견한 독특한 이력의 공무원
  • 기사등록 2018-07-31 23: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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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책임감으로 무장된 그의 35년에 고개 숙인다."
회계과 재산계 이기만 지방공업주사(6급)<사진>

▲ 지난 24일 시청 본청 지하 식당 옆 기계실에서 만난 이기만 공업주사(6급)가 자신이 관리하고있는 열관리 설비를 모니터를 보면서 공직 35년간의 소회를 기자에게 설명했다.


자신의 평생을 한 부서에서 그것도 남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 35년간을 동료직원들을 위해 묵묵히 일해 온 공직자가 있다. 그는 5개월 뒤 퇴직을 앞두고 있다. 공직의 끝자락에 한번쯤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그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책임의식으로 무장된 공무원이다.


지난 20일 영천시 인사발령이 있은 다음 날인 밤 9시 20분, 유난히 청사 2층 한 사무실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이날은 주말 입구 금요일(불금). 평소 때면 대부분 공무원들이 서둘러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기심에 당직실을 거쳐 기자가 고개를 빼꼼 내 밀었다. 알고 보니 회계과 이기만(공업 6급, 기계)주사가 고장난 에어컨을 수리하고 있었다.


“밤늦게 뭘 하십니까?”라고 묻자 “네~ 날씨가 더운데 에어컨까지 고장 나서요~”라며 애써 대꾸하지 않으려 했다. 그의 이마에는 투명한 땀방울이 주렁주렁 열렸다. 다음 날이 토·일요일 연휴다.  23일 월요일에는 앞선20일자 人事로 새 직원들이 온단다. 그날 기상청은 영천기온을 39.4℃로 기록했다. 그는 늦었지만 오늘 일은 오늘 끝내야 직원들이 시원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무언의 답변으로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몸에 배인 그의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순간이다. 기자의 질문에는 별로 달갑지 않다는 뜻으로 등을 돌리고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3일 후 더운 날씨 관계로 우연히 공무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씨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게 됐다. 여기서 그가 오는 12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조금 성깔은 있지만 책임의식과 성실하기로는 이씨 만한 공무원이 없다”는 칭찬과 함께 35년간 지하실 한군데서만 근무하고 있다는 이색적 정보를 듣게 됐다.



지난 24일 시청사 뒤 별관 지하기계실에서 위협적인 거대한 기계굉음과 함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배관 사이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본청 지하 약200평과 별관 지하 100여 평에 시청 전체의 냉·난방과 급수, 소방, 가스 등 모든 열관리 설비가 그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두 곳의 냉온수기 용량 420RT(통상 업소용 100평 기준 10RT)에 배수펌프2기, 급수펌프2기, 소방펌프1기와 공조기와 저수조, 배관 등 도저히 혼자서 관리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를 그는 35년간 혼자서 처리해 왔다. 지난 20일 밤 사무실 에어컨 수리와 각 화장실 등 냉·온수관리도 그의 몫 이였던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영양이 고향인 그는 대구에서 실업고를 졸업해 우연히 친구 따라 영천으로 왔다가 친구 대신 이 직업에 그의 몸을 묻었다. 그때가 83년(일용직, 84년부터 무기계약직)이다. 평생 직업이 될 줄도 모르고 처음 밥 세끼 먹기 위해 영천시청과 인연을 맺었다가 35년의 세월이 그를 묶었던 것이다.  83년 시청 본 청사 완공에서 지금까지 그가 1호 기술자다. 영천시청에 취직 후 공무원이 되기 전 4년간 그는 무기계약직(일용)을 고집했다. 공무원으로 전환할 경우 월급이 두 배나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87년 3월 기능8급 지방기계원(보일러)으로 영천시 회계과에 소속된 후 지금까지 직종이나 부서가 바뀐 적도 없다. 오직 열 하나로 먹고사는 특식 공무원이다. 그것도 지하실에서만이다.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으로 지난 2004년 6급으로 승진해 지금은 지방공업주사다. 그 사이 국공유재산관리유공표창, 우수공무원표창, 영천시장 특별표창 등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책임에 땀흘려 왔는지 엿보인다.


부인 이씨 와의 사이에 1남1여를 두고 있는 그는 오는 12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 생활 터가 시청과 가까이 있는 터에 그는 아직 운전면허증도 없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퇴직 후 운전면허증을 취득해 남들이 즐기는 가족여행을 자신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것이 소박한 그의 소망이다.


첫 입사 때는 지금의 자치행정국장과도 ‘니네’했을 그가 지금은 깍듯이 고개 숙여야할 계급 때문에 아마 35년 세월의 인생 무상함도 그를 비켜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자도 한 때 기능공 시절이 있었기에 ‘몽키’로 머리 맞아가며 기슬을 배웠던 시절을 이해한다. 기능이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 없이는 기능인이 될 수 없다. 지금 이기만 주사의 후속 공무원은 적어도 1년간은 그의 허리춤에 붙어 현실 경험을 익혀야 하지만 아직도 그는 혼자다. 이같은 직업은 작은 소홀함(자만심)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크고 작은 소소한 실수와 사고는 잦았다. 기능은 요령으로 탄생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 이것이 기능인 통과의례법칙이다.


35년 동안 여름, 겨울에는 한 번도 휴가를 가 본적이 없는 이기만 지방공업주사, 배관이 찢어지고 물이 새며 더러는 긴장감으로 가슴을 쓰려내려야 한 적도 있지만 “그는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무사히 공직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감사”로 여긴다.


그는 후배 기능직 공무원에게 “비록 기능직이지만 국가관과 책임의식이 강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영천시 1047명의 공무원은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 뒤에 그가 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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