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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情千里 (2)...교육자 최완우 선생 편 "熱情(열정)과 奉仕(봉사)로 외로운 이웃을 만나다" - “대가없이 주는 것이봉사, 봉사의 부메랑은 삶에 대한 보람”
  • 기사등록 2019-04-24 13: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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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찬 기자]

학교에는 수많은 교사들이 있다. 사회에서도 선배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인생의 참된 스승을 만나고, 그가 말하는 교훈을 듣고, 그의 행동을 본받으며, 삶의 지표로 삼을 기회는 많지 않다. 본지의 특별기획 人情千里(인정천리)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한 평생 교단을 지켰고, 퇴직 후 봉사활동에 앞장서 열정을 불태웠던 최완우 선생(전 영천초 교장)을 지면에 모셨다. 단순한 가운데서도 치열했던 그의 삶의 궤적 속에서 독자들은 인생의 이정표를 발견하고, 삶의 양식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완우 선생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영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국민 누구나 힘들었던 그 시기에 그는 영천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교육대학을 졸업했다. 1971년 첫 부임지가 영천 청경초였다. 그곳에서 7년간 근무를 했다. 그렇게 정든 고향 영천에서 21년간 평교사 생활을 했고, 청송의 한 학교서 6년6개월을 보냈다. 이후 그는 대구대에서 특수교사자격을 취득해 특수공립교인 경주 경희학교에서 교감이 됐다. 그는 그곳에서 4년6개월 재직했다.


▲ 본지 장지수(왼쪽) 대표와 최완우 선생님


가만히 보니 학교마다 재직 기간이 꽤 길다. 특히 초임 교감으로 갔던 경희학교는 2년 정도 머물다 승진해 가는 중간 통로로 여겨지는 곳. 그곳에는 80여명 다양한 전공의 교직원들의 개성이 무척 뚜렷했다. 각양각색 장애학생들의 특수성은 바깥에서 보거나 만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는 거기서 학부모들의 상담역을 도맡았다.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담당교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응어리진 가슴을 그에게 열어보였다. 그는 그들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몸속에 꿈틀대는 DNA의 명령에 따라 그 일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자 당시 경희학교 교장이 간곡히 그를 붙들었고, 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교장이 돼 영천에 다시 돌아 온 그는 2008년도에 모교 영천초의 교장이 됐다. 그해는 영천초 100주년이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동문들이 교육당국에 그를 영천초 교장으로 보내달라고 열화같이 건의를 했다고 한다. ‘영천초 100년사’ 책자 발간 과업이 그의 몫이었다. 그의 마지막 임지는 청통초다. 그는 공모교장으로 그곳에 부임해 41년간의 교직을 마무리했다.


그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열정으로 꽃피웠다. 첫 교사 부임 때 배구반을 맡았는데, 그 배구반은 2명의 체육교사를 배출했다. 영천초에서 서예반을 지도할 때는 학생들이 문화원 백일장을 섭렵했다고 자랑했다. 그러기에 그는 청소년들의 진로 지도에 있어서 부모의 간섭을 배격하고, 청소년 자신의 적성과 열정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철저한 원칙을 갖고 있다. “적성이 맞고 열정이 있어야 적합한 직업을 갖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2013년 교단을 떠난 그에게 ‘자원봉사’라는 인생 2라운드가 펼쳐졌다. 그는 市조직에서 민간단체로 분리된 영천시자원봉사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그때 영천시장이 1주일에 이틀 정도만 비상근으로 근무해도 된다고 적극 권유해 수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센터장 재직 중 그는 휴일도 없이 봉사현장을 찾았다. 그는 봉사조직을 관리하러 간 게 아니라 봉사를 하러 갔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가없이 직접적인 서비스를 주는 것”이 그가 정의한 봉사며 “봉사는 되돌아오는 대가가 엄청나다. 그것은 삶에 대한 보람이다. 봉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는 게 그의 봉사 철학이다. 그런 만큼 그는 받았던 소정의 업무추진비도 다 되돌렸다고 전한다. 4년이 지난 2017년 봉사현장을 같이 누볐던 많은 회원들이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지만, 그는 명예로운 센터장 자리를 후배에게 흔쾌히 넘겼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이슬을 먹고 사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국가와 사회가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새벽에 일어나 학업과 할 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는 ‘땀의 대가는 정직하고, 노력 없이 이룩된 성과는 없다’는 말을 철칙으로,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친구가 있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선배 삼천리, 후배 삼천리’라는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막이’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재능기부를 한 영천시민이 2만5,000명에 이른다. 이것은 영천의 시민의식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영천의 미래를 밝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지도자들이 조금 더 분발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 남아있는 갈등요소를 녹여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다. 영천시와 최기문 시장에게는 인구유입 보다도 있는 사람들이 쉬 떠나지 않는 환경조성이 중요하고, 인사나 여러 정책에 있어서도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완우 선생은 요즘 부인 이경조 여사와 함께 걷기부터 헬스, 테니스, 등산으로 건강을 챙기고, 정서를 위해 서예를 한다. 근래에는 ‘논어’를 배우며 학덕을 쌓으면서 연금공단 자원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슬하의 두 아들은 객지에서 자리를 잡았고, 휴일이면 손주들을 데리고 영천을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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