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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년만에 다시 피어난 사제의 정▶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과 제자 김육 - 지산(芝山)선생 학술세미나▶귀양살이 스승에게 배운 김육, 영의정이 돼 대…
  • 기사등록 2019-05-27 19: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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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찬 기자]
440만에 스승과 제자가 만났다. 스승은 귀양살이 중이었고, 제자는 어린 학동이었다. 나중에 스승은 임진란에서 공을 세운 무인이자 영천선비의 표상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실상 조선 중기 교학사상의 뚜렷한 학풍을 세운 대학자로 인정된다.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선생 이야기다.


제자(김육)는 나중에 출사를 해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왜란과 호란으로 피폐해진 국가의 개조와 재건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조선조 중기 조세대개혁인 대동법을 완수한 대개혁자로 꼽힌다.


이날 창녕조씨와 청풍김씨 양 문중의 대표들이 조우했고, 향후 도잠서원에서 함께 선양을 하기로 해 질곡의 시대를 살다간 스승과 제자가 이제야 같은 날 후세들의 배향을 함께 받게 됐다.


더욱이 이날 만남의 본질은 두 선각자의 교훈을 배우고자하는 모든 후학들의 만남이며, 그 교훈을 현대와 미래에서도 적용하고 응용하고자 하는 학자와 정책관 등 스승과 제자인 두 선각자를 연구하는 모두의 모임이었다.



제3회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선생 학술세미나가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대주제로 지난 25일 영천시 대창면 소재 도잠서원에서 열린 것이다.


(사)지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조준걸)가 주최하고, (사)지산학연구소와 경북대 퇴계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조준걸 (사)지산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조주환 창녕조씨 대종회장, 김갑수 청풍김씨 대종회장, 김유송 청풍김씨 문의공파종회장, 이남철 전 도잠서원 원장(전 영천군수) 등을 비롯한 문중 대표와 지역의 문화인들, 최기문 영천시장, 조창호 시의회 부의장, 최순례·김병하 시의원, 정우동 민주당 지역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또 대구가톨릭대 역사학과에서 50여명의 전족 학도들이 찾아와 학술세미나에 귀를 기울였다.


조준걸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현대인들이 물신풍조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주변의 황폐한 문화는 정신을 혼돈케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향기를 체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문 시장은 “기념사업회에서 10억원의 인재육성장학금을 기부해 줘서 시립도서관에 ‘지산홀’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도잠서원을 신규관광자원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학술세미나에 앞서 김정희씨가 축시를 낭송했고, 김태종씨가 대금연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학술세미나의 첫 번째는 조순 지산학연구소장이 ‘지산조호익의 교학사상’을 중심으로 제1 주제를 발표했다. 토론은 정병호 경북대교수가 맡았다.


조순 소장은 지산필화(芝山筆話)에 나타난 교학사상이 율곡 이이의 10개장으로 구성된 격몽요결과 비해 50개의 장으로 구성됐다며, 비교 분석했다. 조 소장은 “은혜는 부자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의는 군신간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것을 지산 선생으로부터 배웠다”는 제자 김육의 말을 인용하면서 발표를 맺었다.



학술세미나의 두 번 째는 이헌창 고려대 경제학과교수가 ‘조선후기 최대 정책업적의 김육과 스승 조호익’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토론은 김종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이 맡았다.


이헌창 교수는 “김육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 동전주화의 통용책 등을 통해 17-18세기 경제성장을 낳은 제도 개혁에 최대의 공헌을 했다. 또 서양 역법인 시헌력의 도입을 주도하는 등 많은 정책업적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김육의 글을 빌어 “선생은 천품(天稟)이 아주 높아서 가슴 속에 막힘이 없었으며, 학문을 좋아하는 정성과 도를 즐기는 마음이 한결 같았다. 유배지에 있었던 17년 동안에 서책을 스승과 벗으로 삼았으며, 읽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읽어 반드시 두루 통달해 깨우쳤다. 그러므로 참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공효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선생은 일찍이 게으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성현들의 글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라며 조호익과 김육과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설명했다.


조호익의 성품과 학풍을 계승한 김육은 차후 예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는데, 그는 조호익이 별세하자 3개월간 시묘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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