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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보·조선독립신문 창간호' 영천에 있었다 - 용화사 대적광전 '등사본' 발견돼...영천역사문화박물관 공개
  • 기사등록 2019-06-05 00: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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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찬 기자]
영천역사문화박물관(지봉스님)은 1919년 3월 1일 발행한 '조선독립신문 창간호'와 같은 날짜에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민회보'(발행일자 미상)가 함께 기록된 '등사본' 1점을 3일 공개했다.


이 자료는 대한불교조계종 용화사(영천시 야사동) 법당(대적광전)의 탁자 안 고서 속에서 발견되어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조선독립신문 창간호에는 민족대표 33인 등이 태화관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종로경찰서에 구인됐다는 내용과 2천만 민족이 마지막 1인까지 남게 되더라도 절대 난폭하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비폭력 운동 방침이 실려 있다.


'국민회보'는 발행일자가 적혀있지 않은 발행처 미상의 지하신문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아태행태상황제폐하(我太行太上皇帝陛下) 붕어(崩御)에 원인(原因)'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을 제기하고, 귀족대표 이완용 등 6인을 지목해 '가칭 선일동화(鮮日同和)함을 증명(證明)한 역적(逆賊)들'이라 쓴 내용을 담고 있다. 기사내용을 분석해 보면 존재 사실이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던 국민회보 1919년 3월 1일자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당시 이종일·이종린·윤익선씨 등이 주도해 창간했다. 창간호는 활판인쇄로 발행되었으나 이번에 공개한 영천역사문화박물관소장본은 등사판으로 발행한 것으로 보아 3·1운동 시점에서 후일에 등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기는 세로 22.0㎝, 가로 31.4㎝로 A4 용지 크기보다 조금 큰 사이즈이며 종이는 두 장을 이어 붙인 것으로 국한문이 혼용되어 등사됐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소장본의 가치는 1919년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가 한 장의 종이에 등사돼 배포된 것으로는 국내에서는 최초라 볼 수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1919년 3월1일 발행된 인쇄물이다. 조선독립신문사가 서울에 있는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인쇄해 이날 배포했다. 창간호는 활판 인쇄로 발행됐으나 이튿날 인쇄된

제2호부터는 등사판으로 발행됐다. 


화사 대적광전은 1982년 대구에서 영천으로 이건 될 때, 이 법당의 불단에서 나온 1545(가정28)년 유점사개간 '선문염송집'에 조선선종경북포교당(朝鮮禪宗慶北布敎堂) 사찰직인과 소장인 대구부 덕산

정 62번지 2호 조선선종경북포교당의 압인이 있어 건물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등사본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도 이 책과 함께 숨겨져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사진
1919년 3·1운동 당시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이 함께 기록된 등사본이 영천시 야사동 용화사 내 대적광전에서 발견돼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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