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본지특별기획] 탐라순력도 대탐방1▶제주를 제주답게 완성한 역사의 현장
  • 기사등록 2020-02-07 19:37:23
  • 수정 2020-02-07 19:40:17
기사수정


▲ [영천신문/영천투데이 강병찬 기자]


본지는 경자년 첫 기획으로 제주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 보물 제652호 중) 대탐방기획을 실시했다. 지난 295호(2020.1.16.자)에 ‘탐라순력도 전면 공개...국민 품으로 되돌아왔다’를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이미 게재했다. 이어 지난 1월 30~ 2월 1일까지 제주목관아~제주세계유산본부~제주국립박물관~제주자연사박물관~제주도예촌~추사적거지(대정읍성)를 차례로 출장 방문해 지역 문화와 문인의재조명을 위해 탐라순력도와 병와 이형상 제주목사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했다.


이번 호는 제주를 갔다 온 보고서로 탐방기를 싣는다. 본지 특별기획은 올해 연중 이어진다. 본지는 제주도의 탐라순력도 국보승격 추진에 맞춰 관련 소식을 출토지 영천에 꾸준히 전달해 제주도와 영천시의 우호와 친선을 도모한다. 또 영천시 성내동 호연정에 보관 중인 보물 652호 나머지 서적류의 국보 승격을 위한 재평가, 병와 이형상 선생을 국가적 실학자로서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 취병담(翠屛潭)이라 불렸던 지금의 `용연`은 당시 밤에 뱃놀이를 즐긴 곳으로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의 하나다.


◇병와 선생과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span>용연 사진=강병찬 기자>

새로 나온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잘 갖춰진 리조트를 찾아 다니는 요즘의 여행 트렌드. 그러나 유별나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위인을 만나 모험의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그 천재(옛 위인)에게 우주에 대한 지혜를 들어보고, 인간사 불멸의 업적을 함께 세우며 불후의 기록을 남기는 과업에 동참해보는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318년 전인 1702년 초봄, 병와(病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 이하 존칭 생략) 선생은 영천시 성내동 호연정에서 봇짐을 쌌다. 이형상은 45세에 지금의 부산광역시장격인 경주부윤(慶州府尹)를 그만두고,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명을 알게 되는 나이 · 50세)에 학문의 완성을 추구하기 위해 경북 영천에 정착해 있었다. 그런 이형상에게 조정에서 갑작스레 ‘제주목사(현 제주특별자치도지사)’직을 내렸다.


이형상은 이미 몇개 관직을 고사했던 터다. 제주목사는 육지와는 가장 먼 곳, 한직 중의 한직이라 또다시 고사가 예상됐다. 그러나 반응은 정반대였다. 이형상은 즉시 봇짐을 꾸려 장도에 올랐다. 이형상에게는 조정에서 벌어지는 '당쟁'은 물론 ‘직급’이나 ‘계급’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이형상의 질서)가 제주에 대한 자료 및 관직을 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있었다.


조선반도의 최남단인 제주도. 태풍과 거센 비바람은 물론 외적의 침략을 가장 많이 받아온 제주도와 제주인은 이형상에게 무한한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때는 1702년 3월이었다. 그는 유배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1703년 5월 제주를 떠났다. 그는 실제 수개월 전에 파직이 됐으나, 조정의 문서가 원인불명으로 제주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형상은 수개월 후 파직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탐라순력도와 선물로 받은 병와금을 달랑 들고 급작스레 육지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고 한다.


▲ 탐라순력도와 오시복 간찰<제주박물관>


◇제주를 제주답게하는 탐라순력도

탐라순력도가 있어서 제주가 제주다워진다. 탐라순력도가 제주를 진정한 제주로 거듭났다. 탐라순력도를 비롯한 이형상의 유고와 유물들은 영천시 호연정에서 300여년간 고이 간직돼왔다. 병와유고 중 제주도와 관련된 것은 11종 서책과 백여 편의 편지(간찰)와 악기 등이 있다. 가장 중요한 탐라순력도는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탐라순력도의 해설본 격인 ‘남환박물’(南宦博物)은 보물로 지정된 것은 영천에 있으며, 또 다른 ‘남환박물 필사본’은 ‘탐라장계초’(耽羅狀啓秒)와 함께 제주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병와 이형상 관련자료’란 명칭으로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돼 있다. 제주도는 제주와 관련된 150여 편의 이형상 간찰도 추가로 확보해 제주자연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27일 탐라순력도를 문화재청에 단독으로 국보 승격을 신청했다. 또 그해 12월 26일 관련 이미지 파일을 전격 공개해 누구나 조건 없이 출처만 표기하면, 활용이 가능하도록 개방했다.


제주도는 문화재청의 국보심사가 1년 이상 걸린다는 예상하에 올해 탐라순력도 및 병와 이형상 제주목사에 대한 특집전시, 다큐멘터리 제작,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국보 승격을 위한 학술적 성과를 축적하고, 제주도민은 물론 학계와 관광객들에게 대대적으로 관심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영천의 인물(위인) 이형상 선생을 제주시가 영웅으로 탄생시켰다.


▲ 용두암 <사진=2020년 1월4일 오전 강병찬 기자>


◇318년 전에는 용두암이 2개였다

본지는 이형상의 10대손, 보물 제652호 소장·관리자인 이임괄씨(전 영천향토사연구회장)와 함께 지난 1월 30일 병와 이형상의 발자취를 따라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공항에 내려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탐방길에 나섰다.


가까이에 '제주목관아'(제주시 관덕로7길 13)가 있는데, 가는 길에 용두암과 용연을 둘러봤다. 용두암과 용연은 탐라순력도 마지막 부분 ‘병담범주’(屛潭泛舟·취병담에서의 뱃놀이)의 그곳이다. 취병담(翠屛潭)인 용연은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의 하나로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하여 휘영청 밝은 밤에 용연을 찾아와 밤뱃놀이를 즐겼다. 그래서 취병담에는 다른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목사·판관·유배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바위나 절벽에 유람의 흔적을 남긴 기념비적인 마애명(磨崖銘)들이 전해지고 있다. 취병담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본 산의 지형이 상부 중앙의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고, 취병담에 배를 띄워 놓고 기녀들과 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대천(大川) 우측에 민가의 모습, 용두암 부근에서 해녀들의 잠수 작업광경, 연대의 위치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특이한 것은 병담범주에는 용두암이 2개 그려져 있으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있다. 위쪽 용두암으로 가는 교각도 눈에 띄었다. 30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용두암 한 개가 파괴된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제주도의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제주목관아


◇탐라순력도가 완성한 '제주목관아'

제주 사람들은 사적 제380호인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를 여전히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 혹은 줄여서 ‘목관아지’라 부른다. 그들이 빠르게 발음하면 외지인들에게는 ‘목관아재’로 들리기도 한다.


제주에 온 목사들이 수백년 동안 그곳에서 근무했고, 이형상도 목사 중의 한 명이라 그곳을 찾은 것이 아니다. 제주목관아는 제주시 삼도 2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아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시대를 겪으면서 처참하게 파괴된 그곳을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발굴을 진행해 탐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관아의 중요한 시설이었던 동헌, 내아 건물터 따위를 조사했다. 관아 터의 남쪽에는 조선 세종 30년(1448)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제주 관덕정이 있다.


제주도는 발굴조사가 끝난 즈음인 1999년에 ‘탐라순력도’를 확보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화유적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복원’을 하려면, 발굴조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도나 문헌, 그림 등 관련 자료들이 ‘복원’의 요건을 갖출 만큼 충실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정부로부터 복원으로 인정 받으면, 총예산의 70%를 국비로 지원해주는 것이 통상적이다. 재현의 경우는 지자체가 임의로 진행하는 것이므로 전액 지자체의 예산으로 사업을 벌여야 한다. 재현 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탐라순력도에는 대표적 건물인 관덕정은 물론 관아의 각종 건축물들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고, 건물명도 병기돼 있다. 제주도는 탐라순력도를 근거로 350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현재 제주목관아의 복원을 완성했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탐라국의 왕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근에 남아있는 제주성과 더불어 제주도 역사문화관광의 관문 역할을 맡고 있다.


▲ 제주목관아에 전시된 이형상 선생 초상화(가운데)


◇세계유산본부, 다큐멘터리 제작
제주도는 특별법에 의해 특별자치도로 조직돼 있다. 제주도 산하에 자치시인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있다. 제주의 각종 문화·자연유산들을 총괄하는 곳은 ‘세계유산본부(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569-36)’다.


탐라순력도 등 문화재들은 ‘역사문화재과’에서 업무를 본다. 탐라순력도를 국립제주박물관에 위탁해 관리하고, 제주목관아에 전체 이미지 파일을 게시하며, 국보 승격을 추진하는 곳도 이곳이다. 그곳의 학예연구사 김나영씨는 “대실학자로서 18세기에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면, 17세기에는 병와 이형상이 있었다”면서 탐라순력도의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병와 선생에 대한 인물평을 했다.


김 학예사는 또 탐라순력도 국보 승격에 대해 “문화재청에 조속한 승격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이 책의 역사적 가치와 제주도민들의 염원을 전했다. 그는 “제주도 차원에서 ‘탐라순력도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영천에 남아있는 제주 관련 유물들도 친선과 우호 차원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기를 원했다.


영천에는 보물 제652호 가운데 ‘남환박물’이 있고, 국가민속문화재 제119호인 ‘병와금’과 칼, 각종 옥인장들도 제주와 관련이 있다. 또 국가 지정을 받지 않은 서적류 8권도 제주도에 관한 것이다.


특히 병와금은 이형상 목사가 갑작스레 제주를 떠나올 때, 유배자였던 오시복 전 이조판서가 준 선물로서 제주의 나무로 제작됐다. 옥인장들은 탐라순력도의 마지막 장인 해설문에 11개가 나란히 날인된 그 인장들이다. 칼은 이형상 목사가 업무를 볼 때 차고 다녔던 지휘검으로 추정된다.


▲ 지금의 제주박물관 전경(2020년 1월4일 오전)


◇국립제주박물관, 10월에 특집전 개최

탐라순력도가 보관된 국립제주박물관에는 오는 3월 1일까지 ‘제주유배인 이야기’가 기획 전시되고 있다. ‘먼 길 낯선 여정, 제주유배를 들여다보다’는 주제의 첫 장르에는 탐라순력도의 ‘호연금서’(浩然琴書·보길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다 봄)가 장식했다. 보길도(甫吉島)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호연한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며 책을 읽는다는 뜻의 그림이다. 좌측에 원당망(元堂望), 우측에 사라망(沙羅望)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중앙의 진성(鎭城)은 화북진성(禾北鎭城)에 해당한다. 몇 척의 배가 별도포(別刀浦)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당시 육지 지역과의 주요 통로로 조천포(朝天浦:朝天館浦)와 함께 별도포가 널리 이용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중에는 또 이형상 목사가 보존한 간찰(오시복이 보낸 편지)이 석 점 전시됐다. 이조판서를 지냈던 남인 계열 오시복은 이형상 목사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이형상 목사가 오시복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탐라순력도를 제작했고, 오시복으로부터 4자로 구성된 그림의 제목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오시복은 편지 끝에 자신과의 교류로 이형상 목사가 화를 입을까 두려우니 편지를 태워버리기를 권유했으나, 이형상은 일체 그것을 보관해 320년이 지난 지금 중요한 자료로 가치를 발하고 있다. 이형상이 오시복에게 보낸 편지들은 같은 이유로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탐라순력도 진본은 국립제주박물관 지하 깊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그곳에 들어가 보려면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받아야 한다. 본지 일행은 제주도와 제주박물관 이중의 허가를 받아 수장고 안으로 들어가 탐라순력도 진본을 열람했다.


탐라순력도는 2007년께 보존처리를 했다고 한다. 원본 화질의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했으나, 바탕의 남색 비단이 다소 훼손된 것을 보존처리 때 남색 두꺼운 종이 위에 그림 원본을 옮겨왔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상태는 깔끔하게 변모했으나, 이임괄 씨는 “기존의 비단 바탕 위에 그림이 놓여있었던 것에 비해 진정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문화재의 보존은 그 시대의 같은 재료로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주도와 문화재청이 최선을 다해 보존처리를 했겠지만, 같은 재료와 같은 기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보존처리를 좀 더 미뤘다가 신중히 할 수도 있었던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다.


제주박물관은 박물관을 확장하고, 오는 10월께 탐라순력도 특집전을 열 계획이다. 그들은 영천에 있는 제주 관련 문화재들도 그 특집전에 같이 전시를 하기를 원했다. 이임괄씨는 과거 탐라순력도가 사사롭게 매매돼 간 아픔을 뒤로하고, 제주박물관의 요구에 대해 제주도와 영천시의 유구한 우호증진에 주춧돌을 놓는 심정으로 교류에 응하겠다는 생각이다.

▲ 제주공항 입구 돌방구에 걸터앉은 이형상 선생의 10대손 이임괄씨(전 영천향토사연구회장), 이씨는 현재 보물제652호를 소장·관리하고 있다.


0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yctoday.net/news/view.php?idx=615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회원로그인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영천 제6회 작약꽃 축제...10일부터 19일까지 영천시 화북면 일대
  •  기사 이미지 영천시, 2024년 1분기 지역발전 유공자에 대한 표창 수여
  •  기사 이미지 청도읍성 예술제, 관람객 구름 인파 대 성황...미스터트롯2-박지현 가수 공연
청와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