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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경북 영천,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선생 학문과 사상 재조명 본격 착수 - 첫 학술대회, 19일 영천 교육문화수련원 평생학습관에서...병와·퇴계연구소…
  • 기사등록 2021-03-22 11:01:34
  • 수정 2021-03-22 11: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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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학문과 사상 재조명 본격 착수

첫 학술대회, 19일 병와·퇴계연구소 합동



[장지수 기자]

조선 후기 성리학자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년~1733년)선생 학문과 사상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 하고있다.


병와연구소(소장 박규홍)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소장 정병호)는 지난 19일 영천 교육문화수련원 평생학습관에서 '甁窩 李衡祥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첫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본격 병와 선생의 업적 재조명 활동에 돌입했다. <사진>


이번 학술대회는 앞서 지난해 11월 경북대학교에서 영천문화유산연구회(회장 안재준), 병와연구소(소장 박규홍),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소장 정병호)가 병와 선생에 대한 ‘학술 및 교육 교류 협약’을 맺은 후 만 4개월 만이다.


병와 선생은 효령대군(孝寧大君) 10대손으로 조선 후기 고위관료를 지낸 성리학자로서만이 아니라 17세기 실학을 정립하고, 청백리를 실천했으며 민초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 인권운동가로서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영천이 낳은 국가적 인물로 재조명되고 있다.


선생은 1677년(숙종3) 사마시에 합격한 뒤, 28세 때인 1680년(숙종6) 별시 문과에 급제해 이듬해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길에 들어섰다. 경주부윤과 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은퇴 후 대부분의 생애를 경상북도 영천시 호연정(浩然亭)에서 20여 년간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정진했다.


특히 선생은 조선 숙종 28년(1702년) 3월, 50세 때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했다가 이듬해인 1703년(숙종29) 6월 유배인(천주교도)들을 두둔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1년 3개월 만에 파직됐다. 그사이 그는 탐라순력도를 제작한 것 외에도 제주의 전통풍속을 개혁해 문명화(유교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확인되고 있다. 학계는 그의 이러한 투철한 정신세계와 적극적인 활동이 근대의 계몽 운동과 현대적 인권 의식의 기초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 가운데 병와 선생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보물 제652호)는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돼있으며, 병와 선생이 제주 목사시절 당시 제주 순력(巡歷)을 실시해 제주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41폭의 화첩이다. 현재 제주시는 이 화첩을 국보로 신청해 두고있어 그 결과가 기대된다.


이날 첫 학술대회는 박규홍(경일대) 병와연구소장의 '병와 연구소의 현황과 과제'라는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김창언(제주도예촌) 탐라순력도 작도법 고찰 등 구지현(선문대), 김용찬(순천대), 김진희(아주대), 이정화(동양대) 5명의 발제 및 정병호 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한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첫 쟁점은 역학 · 천문 · 지리 · 역사 · 예악에 이르는 병와 선생 이 남긴 방대한 저술 188종 415책의 수치가 문화재관리국과 각 학자들의 논문과 일치하지 않아 병와 유고의 실체적 규모를 정의하는데 촛점이 모아졌다. 이가운데 일부 9종 14책은 현재 영천 호연정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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