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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속에서 조선 역사를 찿는다⑩... 일본 최초 두부기술자, 조선 박호인 - 조선 박호인, 토사(土佐)지방에 일본 최초 두부공장 세워,
  • 기사등록 2021-05-03 19:42:38
  • 수정 2021-05-04 09: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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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속에서 조선 역사를 찿는다⑩...일본 최초 두부기술자, 조선 박호인

임진왜란 당시 코지 지방에 전파된...한국두부 '아끼스키(秋月)'

왜병 군량미 대부분 두부, 말린 밥(꼬두밥)이 주식

조선 박호인, 토사(土佐)지방에 일본 최초 두부공장 세워,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철학박사/학술박사)

코지(高知)지방은 일본열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오카야마(岡山)에서 세토하시(瀨戶大橋)를 지나 2시간 거리다. 임진왜란 때 이 지방의 성주(城主)였던 쵸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병사 3,000여명을 데리고 경남 진해 웅천(熊川)에 주둔한 왜장이다.


쵸소카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토사(土佐)지방의 성주로 임명받은 자로 토사지방은 지금의 시코쿠(四國)지방인데 당시 토사라 했다. 중심지는 우라도(浦戶)였는데, 쵸소카베성주가 대대로 살았던 곳이라 직접 통치해 왔다. 진해 웅천에 도착한 쵸소카베는 코니시유키나카(小西行長)가 지은 웅천성(熊川城)에 주둔하면서 진해일대를 분담받아 전쟁에 임했다.

▲ 포로로 간 진해 박인호의 두부 전문 요리집 전국 체인점 간판


◆진해사람 박호인의 한국두부의 전파

쵸소카베의 병사 3,000여명 중에는 참모직이였던 요시다 이치사에몬 마사시케(吉田市左衛門政重)란 자가 있다. 이 자가 전투중 배가고파 조선 가정에 들어가 두부를 빼앗아 먹고 부대장 쵸소카베에게 조선에서만 먹을 수 있고, 맛이 아주 좋으며 어디서나 요리를 하지 않아도 쉽게 먹을수 있어 병사를 출동시켜 그 음식을 빼앗아 병사들을 먹이자고 건의했다.


쵸소카베는 급할때 병사들의 식량으로 먹을 수 있으니 수탈해오라고 명령했다. 요시다참모는 병사를 데리고 진해 박호인(朴好仁)의 두부공장에 난입해 두부를 빼앗았다.


당시 왜병들의 군량미는 대부분 두부, 말린 밥(꼬두밥)이 주식이었다. 하루는 쵸소카베가 두부 기술자를 데리고 와서 웅천성에서 직접 두부를 만들기로하고 박호인을 붙잡아 왔다. 박호인는 포로의 몸으로 성내에서 쵸소카베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성안에는 천수각(天守閣)이 있고 누각(櫓閣)이 있어 많은 일본병이 주둔해 여러 부대가 있었다. 웅천성안에서 두부를 만든다는 것은 군량미 대신 반드시 필요했던 부분이다.


▲ 초소카베모도치가 왜장의 초상화와 포로로 붙잡혀 간 박호인의 후손. 지금 생존중


◆한국두부 일본 전파 역사적 배경

임란때 일본군의 위세가 드높자 도요토미의 지시로 중국 명나라와 함께 '강화정책'(講和政策)을 시도했다. 강화정책은 조선을 경기도지방을 중심으로 둘로 나누어 북쪽은 중국 명나라가 지배하고 남쪽은 일본이 갖겠다는 공론이다, 조선 남부에는 문화인과 귀중한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던 도요토미의 속셈이 강화정책에도 깔려 있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의병장 사명대사(泗溟大師)를 보내 강화정책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혀 이를 결렬시켰다. 1593년 6월.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1년 2개월후다. 강화정책 결렬로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바로 정유재란이다. 때문에 일본군은 더 많은 병사를 파견하고 도요토미는 조선의 문화인과 기술자는 한사람도 성에 두지 말고 일본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때 웅천성에 포로로 잡혀왔던 박호인도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끌려갔다.


당시 일본은 우리 문화인과 문화재를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배를 왕래시켰다. 그 때 일본으로 들어간 우리 문화인은 박호인을 비롯해 의사(한의사)인 경동(経東) 등 280여명이나 된다.


이들을 태운 배는 토사(土佐)지방, 쵸소카베왜장이 살던 우라도(浦戶)에 도착해 포로생활을 하며 문화활동을 했다. 두부를 만드는 박호인도 이곳에서 일본 최초로 두부공장을 세우고 제조를 시작해 일본 전국에 알려 오늘의 두부 초석이 되었다.


현재 일본내에 여러 두부기술로 지방에 따라 특색이 있는 두부를 만든다. 하지만 토사지방 두부는 지금도 옛날 박호인 두부기술로 장인정신을 이어받아 맛은 변하지 않고있다, 때문에 코지지방에 여행가는 사람이면 지금도 누구나 코지두부를 선물로 구매해 갈 정도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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