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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역사를 찾는다⑪...김해에서 끌러간 여도공 백파선(百婆仙)① - [임진왜란 조선 여도공의 활약]
  • 기사등록 2021-05-25 20:09:43
  • 수정 2021-05-25 21: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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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부터 수 십년간 일본을 오가며 일본속에서 조선역사를 연구한 본지 칼럼 김문길교수(부산외대)가 열정적으로 파해친 조선여인의 인물, 조선 사회에 여도공들의 활약상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철학박사/학술박사)

왜병이 약탈해 온 물품(문화재급)목록과 납치 도공 명단 발견,

두루마리로 길이 1m 폭이 40cm.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여성 도공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은 흔히 도자기 전쟁 또는 문화전쟁이라 말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전쟁 와중에 조선의 문화 장인(匠人)들을 많이 잡아오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그 때 많은 조선 도공들이 잡혀갔다. 남자 도공뿐만 아니라 여성 도공도 포함됐다. 조선 도공들 중 사쓰마(薩摩), 심당길(沈當吉), 아리다(在田, 이삼평(李參坪) 등이다. 사료(도공을 잡아왔다는 증명서)에 따르면 심당길과 이삼평의 스승이 바로 여(女) 도공 백파선(百婆仙)으로 확인됐다.


도요토미(豊臣秀吉)는 전쟁 중 조선의 도자기가 탐이 나 가급적 많이 약탈해오도록 명령했다. 도공을 납치하는데도 혈안이 되었다. 필자가 일본속 조선역사를 연구 하면서 당시 왜장의 후손 집에 묵은적이 있다. 어느날 후손이 나에게 건네 준것이 일본 각처에 전달한 조선에서 약탈해 온 물품(문화재급)목록과 납치해온 도공들의 명단이었다. 이 문서는 두루마리로 길이 1m 폭이 40cm나 됐다.


해당 문서에는 조선에서 30여명씩 도공을 데리고 와 교토(京都) 후꾸오카(福岡)야마구치(山口)에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 여(女) 도공 백파선도 포함됐다. 백파선은 남편 김종전과 함께 끌려갔다.


▲ (로쿠스케가 조선 도공들을 데리고 왔다는 문서)


당시 김해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던 백파선은 왜장 고토 이에노부(後藤家信)에게 두 부부가 함께 끌려갔다. 고토는 임진때 제2진으로 들어온 나베시마 나오시케(鍋島直茂)의 가신이다. 나베시마는 동래성, 청주성, 수도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성에서 조선 의병과 명나라에 패한 후 후퇴하여 지금 김해시 가락면 죽림동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 당시 나베시마가 지은 왜성도 있다.


죽림동은 김해 오봉산 동쪽과 남쪽에 걸쳐진 가락면의 중심지다. 죽도(竹島)라 부른다. 고대부터 외국상선이 정박하기도 해 죽림항이라 불렀고, 김해의 중심 요새다. 왜장 나베시마는 1593년 7월 진주성을 함락하고 이곳에 왜군들이 주둔하기 위한 성을 쌓았다. 죽림리 왜성을 쌓을 때 똑같은 성을 부산 구포에도 쌓고 이를 '감동포성'이라 했다. 왜장들은 이 두 곳에서 7년 동안 많은 조선인과 재물을 노략질했다. 이 두 성의 규모는 약 1만여 평 규모다.


성 아래는 바다와 맞다아 왜선들이 정박했다. 당시 성을 구축할 때 김해지방 농민을 강제 사역시키고 석축 공들은 일본으로 끌고가 성 쌓는 일에 동원하기도 했다. 지금의 일본교토 후시미 성은 이때 축조했으며, 붙잡혀 온 조선의 석축 공이 지은 것이다. 당시 김해 죽림성은 외부로부터 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석벽을 쌓아 사방 1km 규모로 웅장했다. 지금은 허물어져 그 일부만 남아 희미한 성터와 갈대만 무성하게 자라있다.


▲ 백파선이 일본에서 만든 첫 도자기 작품 `주전자`


김해지방에는 현재도 세 곳의 도자기 가마터가 남아있다. 김해군 좌부면 동산동 동광초등학교 동쪽 언덕에 있는 가마터는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주위에는 지금도 도자기 파편들이 널부러져 있다. 또 김해 상동면 대감리 가마터는 조선 초기 것으로 파악됐다. 주로 백토(白土, 백자) 가마터다. 술병, 향로 그릇 등이 주위에서 출토되고 있다. 여기에 김해군 대동면 주동리에서도 역시 조선시대 백자를 구운 도자기 가마터가 있다. 당시 백파선은 일본에서 주로 백토로 생활필수품을 만들었다. 또 그녀가 김해군 상동면 대감리의 가마터에서 도자기를 생산한 것으로 확인돼 본 필자는 그녀가 상동면 대감리 사람이었을 것으로만 분석한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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