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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칼럼] 일본 속에서 조선역사를 찾는다 ⑫...김해에서 끌러간 여도공 백파선(百婆仙)② - 『일본은 조선인 거주지 당인정(唐人町)에 가마를 만들었다』
  • 기사등록 2021-06-23 23: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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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김해에서 끌러간 여도공 백파선(百婆仙)①에 이어....>


일본 속에서 조선역사를 찾는다 ⑫...김해에서 끌러간 여도공 백파선(百婆仙)②

『일본은 조선인 거주지 당인정(唐人町)에 가마를 만들었다』

 

▲ 본지 칼럼_김문길 부산 외국어대 명예교수, 한일문화연구소장(철학박사/학술박사)


  일본 조선인 거주지에 당인정(唐人町) 가마터 만들어


  정유재란은 일본군 전력이 미약해진 상태에 승부의 가림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확실히 임진왜란 때 우리 군대는 힘이 없었다.  군대라고는 해도 실제는 백성들이 창과 칼을 들고 나가 싸우는게 고작.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킬 당시 오랫동안 전쟁을 했기 때문에 조직과 정신무장도 잘돼 있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당파싸움에 빠져 왜적이 부산포까지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김효원이 이끄는 동인과 심의겸의 서인으로 갈라지고,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사색당파 대립이 격화되니 어디 왜적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겠는가, 동래성이 이틀 만에 함락되고 왜적이 쳐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선조는 피를 토하는 피난길에 올라 왜병은 조선의 위력은을 아이들 소꿉장난 쯤으로 비유했다. 


 일본은 10만 조선 기술자들을 잡아가 수용시키기가 힘들어 기술이 적은 사람은 유럽 상인들에게 팔기까지 했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도쿠가와 신정부가 들어설 때 까지는 각 지방 왜장들의 성내에 살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 포로인 수용대책안을 세우면서 각 지방에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터와 도공들이 모여 사는 거주지가 정해졌다. 그것이 당인정(唐人町)이다.  당인정은 조선인들이 사는 촌이란 뜻이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을 당국(唐國)이라 했다.  당인정은 지금도 사가(佐賀)현을 비롯해서 규슈지방, 주부(中部)지방등  각 지방마다 하나씩 옛 지명 그대로 남아있다. 


  김해에서 체포되어간 백파선 부부도 나베시마 진군의 왜장 고토 이에노부의 손에 끌려가 사가 현 당인정에 살다가 도쿠가와 막부의 정책과 사가현 성주 나베시마의 명령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지금 사가 현 다케다(武田)정 구로무다(黑牢田)로 옮겨갔다. 사가 시 당인정에서 버스 편으로 30분 거리이고 JR선(옛날 국철)사가 역에서 나가사키(長崎)행을 타고 20분 정도가면 다케오 온천역이다. 다케오 온천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로무다에 가면 400년 전 백파선 부부가 도자기를 만들던 곳이 있다. 


  지금도 그의 13대 후손이 경영하고 있다. 마루타 다카아키라(丸田隆彰)라는 40대 중년 남자이다.  마루타씨는 400년 전에 백파선 선조가 도자기 만드는 백토가 이곳에 있어서 도자기를 시작했다고 하면서 백파선이 도자기를 만들어 굽던 가마터로 안내해 주었다. 


백파선 가마터를 이어온 후손


  가마굴은 한국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과 같다. 옛날 선조들은 도자기를 구울 때 한국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도자기를 만들어 가마에 넣는다. 가마는 일본어로 「노보리가마」라 한다. 노보리는 우리나라 등요(登窯)가마터라 한다. 도자기를 굽기 위해 장작에 불을 붙이기전 돼지 머리와 시루떡을 만들어 놓은 제물들이 우리나라와 같고 도자기가 잘 굽히도록 한국말로 된 제문을 읽었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한국식으로 제사를 지내지만 신에게 비는 말은 일본어로 하고 있다. 당시 포로로 끌려간 도공들의 풍습과 의식은 이곳뿐만 아니라 일본 각처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포로로 잡혀간 도공들이 각처에 분산되어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도예기술을 자랑하니 그 이름도 각처마다 다르다. 야마구치(山口)에 가면 하기도자기(萩燒)가 있고 북규슈에 가면 우에노 도자기(上野燒)와 다카토리 도자기(高取燒) 가 있고 사가현에 가면 가라쓰 도자기(唐津燒)와 아리타 도자기(有田燒)가 있고 나가사키에 가면 미카와치 도자기(三川內燒)와 하사미 도자기(波佐見燒)가 있고, 구마모토에 가면 야시로 도자기(八代燒)가 있고, 가고시마(鹿?島)에 가면 사쓰마 도자기가 있다. 이들 도자기는 일본 규슈지방을 대표하는 유명한 도자기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도자기라하면 규슈 지방의 도자기를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 때 잡혀온 도공들이 주로 이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며 도자기는 각기 재료가 다르고 만드는 기법과 색채도 다 달랐다


▲ 백파선이 일본에서 만든 첫 도자기 작품 `주전자`


◆백파선의 도자기


  규슈지방에서도 우리나라 도공들이 전해준 도자기 문화가 가장 많이 발달하고 도자기로 가장 유명한 곳은 사가현이다. 원료가 가장 풍부한 곳은 사가현 아리타(有田)이다. 아리타라는 명칭도 도자기의 재료가 풍부한 곳이라는 뜻에서 우리나라 도공들이 붙인 지명이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백자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도자기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면 무슨 원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완성되는지 식별하기가 어렵다. 사가현에서도 백자를 구워내는 도자기 가마터가 사가 현 이만리(伊萬里) 도자기, 사가현 다케오 백파선의 구로무다 도자기, 이삼평의 아리타 도자기 등 세곳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러나 세 곳이 다 특색이 있고 점토라든가 색채 등이 다르다.


  다케오 구로무다의 백파선 이조백자는 아리타의 이삼평 이조백자에 사용되었던 원료와 다른 것이다. 구로무다 백파선의 백자는 백토를 가지고 1,000~1,300도의 열을 가해 구워내고 이삼평의 백자는 도석(陶石) 즉 흰돌을 가루로 만들어 고열인 1,300~1,500도 이상 열을 가해 구워내는 것이다. 백토를 원료로 쓴 백파선 백자는 도자기를 두들겨보면 쇠소리가 나고 이삼평의 백자는 연한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삼평의 도자기는 색상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면이 엿보이나 백파선의 도자기는 순박하고 어두운 면이 있어 당시 일본 서민풍이 엿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백파선은 찻잔이나 주전자같은 일상 생활도구를 중점으로 만들었고 이삼평은 주로 접시와 같은 상류사회 무사계급 풍에 맞는 백자를 구웠던 것 같다. 


  이삼평은 초창기부터 나베시마 왜장의 권력에 순응하여 그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였다. 그래서 무사들이 정신이 가득 담긴 그림을 그린다든가 무사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만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이삼평은 사가 현 성주 나베시마의 손에 끌려온 500여명을 통솔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어 도공들를 돌보는 직책을 맏았던 자이지 훌륭한 도공은 아니었다고 평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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