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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 ① 영천에 뜬 별, 영천에서 지다.
  • 기사등록 2021-09-28 14:52:56
  • 수정 2021-09-30 21: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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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김효정 ]


지난 9월 4일부터 오는 11월 27일까지 북안면 도천리 노계문학관과 도계서원일대에서 「노계 인문학강좌」가 열려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사단법인 노계박인로기념사업회(이사장 김일홍)에서 노계선생의 문학적 감성을 대구.경북 시.도민과 공유하기 위한 강좌다. 이에 맞추어 본지가 가획연재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선비정신(仙秘精神)을 실천한 노계선생의 일대기와 그의 문학관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 노계문학관


노계문학관은 영천시 북안면(신평탑골길93-3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2018년 6월 개관되었다. 노계박인로 선생은 송강정철, 고산윤선도와 함께 조선3대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두 분의 유명세에 비하면 선생은 출세에 뜻을 두지 않고 가난한 선비로서 인간의 정도로 사셔서인지 현재 인터넷에 검색결과도 내용이 적다.


박인로 선생은 1561년 영천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가난으로 제대로 글공부를 하지 못하였으나 13세에 ‘대승음’이라는 한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32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영천의병장 정세아의 휘하에 참전하여 세운 공로로 원종공신 명단에 들었다. 38세에 경상좌도병사 성윤문의 막하에 들어가 성윤문의 청으로 가사 ‘태평사’를 지었다. 39세에 무과에 통과하여 수문장 선전관을 제수받았다. 무인으로 전쟁터와 군에서도 붓과 먹을 가지고 다닌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든 어떤 상황이든 본인의 문학적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인생중반을 넘어 41세에는 이덕형이 도체찰사가 되어 영천에 왔을 때 시조 ‘조홍시가’를 지었다. 45세에 여름 통주사가 되어 ‘선상탄’을 섰다. 50세에 조라포 만호로 제수하였고 51세 이덕형의 별서에 종유하면서 ‘사제곡’과 ‘누항사’를 지었다 이듬해 만호직에서 물러나며 사졸들이 송덕비를 세웠고 독락당을 찾아 ‘독락당’을 지었다. 59세에 울산 초정에서 시조 ‘신유추여정한강욕우울산초정’을 지었고 69세 장현광을 따라 입암에 노닐며 시조 ‘입암29곡’을 지었다. 70세 경상도 관살사 이명에 의해 용양위부호군의 우로를 받았으며 72세 한음의 아들 이여규의 청으로 가사 ‘상사곡’을 그의 동생 이여황의 청으로 가사 ‘권주가’를 짓고 74세 이후 시조 ‘오륜가’, 75세 ‘영남가’ 76세 경주시 산내면 노계곡에 유거하면서 ‘노계가’를 지었다. 77세 장현광을 따라 입암에서 종유하며 ‘입암별곡’을 지었고 1642년 82세로 영천 도천에서 별세했다.


일생을 나열한 것에 2가지 이유를 꼽자면 첫 번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시조 67수, 가사 11편, 한시문110수로 끊임없는 문예활동을 했다. 두 번째는 성(誠), 경(敬), 충(忠), 효(孝)를 평생에 지키려고 애쓰는 마음이 선비와 문인만의 삶보다 사람을 대할 때 느끼는 공경, 나라에 충성하는 도리,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간의 우애 및 친구와의 우정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시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영천 3성인 중에서도 포은정몽주선생, 최무선장군은 생가 및 과학관등으로 많이 알려지지 있고 해마다 영천에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해 영천에서 태어나고 영천에서 후반기를 보내고 영천에서 별세하셨음에도 영천시에서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평생을 허례허식과 거리가 멀게 사셨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학에 전념하신 선생님을 영천시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높은 벼슬을 하고 얼마나 많이 알려졌는지의 결과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관광객 유치에만 몰두한다면 후세의 우리는 위인의 가치를 달리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시체를 넘고 피를 밟으며 나라를 지켰다] 노계 박인로는 어려서 부터 독학으로 13세에 대승음(戴勝吟) 칠언구시를 써서 세인을 놀라게할 정도로 문학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선생은 출세영달(出世榮達)을 멀리하고 32세에는 임진왜란에 투신해 호수공(정세아) 의병창에 참전해 나라를 구했으며 39세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해 수문관·선전관·만호의 직위에 올랐지만 32세에서 50세까지 궁마(弓馬)를 익혀 시체를 넘고 피를 밟으며 나라를 지키는데 마음을 넓혔다


<본 기사는 노계문학관 제공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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