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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령으로 훼철, 148년만에 환구서원(環丘書院) 승원 준공 - 아버지보다 20년 먼저 떠난 아들 의병장 이야기(경북 영천) - 정세아 선생의 구국정신과 아들 의번의 충효 기려
  • 기사등록 2016-11-19 16:53:10
  • 수정 2016-11-19 17: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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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흥선 대원군(1868년 고종 5년)의 서원 철폐령으로 충효각과 추원당만 남아있던 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가 영일(오천)정씨 후손들에 의해 복원돼 훼철 된지 148년 만에 환구서원(環丘書院)으로 승원 돼 18일 준공식을 맞았다.


1990년 경상북도 민속자료(제87호) 지정 후 26년만이며 1777년(정조 1년) 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 건립일로 부터는 239년의 세월이다.



환구서원은 임진왜란 때 영천출신 의병장이던 정세아(鄭世雅)선생과 그의 아들 백암(栢巖) 정의번(鄭宜藩)공의 구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두 부자를 추도하고 유생들의 강학을 위해 세워진 서원건물이다.


환구서원 승원 추진위원회(위원장 정연통)는 2007년 경북도로부터 세덕사 복원 승인을 받은 후 2010년 흥인당(興仁堂) 건립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6년간에 걸쳐 충의당과, 서재, 사당 등을 새로 복원했다.


2011년에는 도산서원(안동)과 옥산서원, 동락서원 등 대구경북 10개서원에 통문 하여 서원으로 승원 돼 이날 김영석 영천시장을 비롯해 후손들과 지역 유림, 각기관장 등 500여명의 축하 속에 준공식을 맞았다.



이날 준공식에서 정연통 추진위원장은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경상북도와 영천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이 보답으로 본 서원은 문호를 개방하여 명실상부한 인성교육장으로 활용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호수·백암 두 선조의 구국정신과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영석 영천시장은 "정세아 선생님은 임란 때 9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분으로 신녕의 권응수 자운과 함께 영천성 복성에 현혁한 공을 세운 역사적 인물이다. 충효의 고장인 우리 지역에 이런 훌륭한 정신을 이어갈 환구세덕사가 복원된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앞으로 환구서원이 호수 선생과 그의 아들 의번공의 유풍을 이어갈 교육의 장으로 발전해 주길 바랍니다"고 말했다.


이날 서원 준공식은 호수선생 14대손인 정상용 전 고경면장이 사회를 맡았다. 또 정재용 환구서원 승원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전민욱 향토사학자가 서원과 호수선생 두 부자의 업적을 소개하고 정현목 종손의 인사로 마감됐다.


<정조가 1784년(정조8년)에 정세아의 아들 의번의 충과 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정려각'(충효각)이 환구서원 뒤 사당 왼쪽에 위치해 있다. 의번은 왜란 당시 경주성 전투에서 의병장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세번이나 전장에 나아갔지만 아버지는 찾지못하고 결국 적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아버지는 아들 의번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호수 정세아의 아들 백암 정의번은 무덤이 없다. 아들 백암은 아버지보다 20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1592년 영천지역에서 처음 의병이 일어났고 아버지 정세아는 58세의 나이에 의병장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당시 58세는 고령에 속한다. 이런 고령에도 불구하고 문인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것은 그의 구국충심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장남 의번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해 1592년에 타계했고 아버지 세아 선생은 1612년에 별세했다. 장남 의번은 영천복성 후 경주성 전투에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왜진과 싸우다 장열하게 전사했다고 환구서원지에 기록돼 있다. 이 싸움으로 경상도 동북지역이 온전할 수 있었는데 결국 의번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이날 준공식을 가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환구길 142-1(선원리 768)에 정세아의 위패를 모신 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 경북 민속자료 87)가 있다. 그 왼쪽 옆에 의번을 기려 1784년(정조 8)에 충효정려각을 세웠다.


지금도 영천댐 수몰지역 주민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한 망향정 맞은편 소나무 숲 깊숙한 곳에 정세아 선생의 묘소가 있다. 그러나 그 앞에 아들 의번의 묘가 있지만 아버지가 그의 유품들을 넣어 만든 허묘다. 의번의 묘비에는 ‘시총’ 이라는 명예의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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