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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류시홍(柳時洪) 제40대 유종회장...'유종회(維宗會)를 말하다'
  • 기사등록 2022-09-21 20:08:56
  • 수정 2022-09-21 2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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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홍(柳時洪) 제40대 유종회장(영천 현대서비스 대표)


산업화로 인해 가문을 보존하는 문제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기존의 가치질서는 파괴되고 새로운 생활지표는 설정되지 아니한 채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생활은 한없이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부해 졌으나 우리의 정신세계는 크게 황폐해 져 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자기와 가족 중심으로 자아를 급속히 축소하는 경향이 있고 날이 갈수록 인간의 탐욕은 깊이를 더한다. 인심이 흉흉하고 조상의 유덕(遺德)은 날로 빛이 바래며.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숭조사상(崇祖思想)이나 문중에 대한 향념(鄕念)은 잊은 지 오래이다.


고매해야 할 우리의 정신이 물질적, 관능적 향락에 젖어들고 윤리와 도덕성은 인간의 뇌리에서 자꾸만 잊혀 져 간다. 우리에게 공동체 붕괴는 인간 사회 전체의 파괴를 야기할 수도 있어 우리는 현실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스스로의 정신무장과 더불어 조상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후세에 전해야 하는 책무도 분명 있다.<글, 류시홍(柳時洪),제40대 유종회장>




[유종회 내력]

유종회(維宗會)는 위대한 조상의 학문과 덕망 그리고 그 분들의 유업을 이어받고자 조직한 영남학파(嶺南學派) 7대 문중 후손들의 모임이다. 대대로 내려온 학덕 높은 선현들의 세의(世誼)와 정분을 오늘에 되살려 친목과 우의를 두텁게 하고자 지난 1980년 결성되었다. 본(本) 회(會)를 구성하는 7대문중의 조직은 다음과 같다.


①여강이씨(驪江李氏)의 유심회(惟心會) ②풍산류씨(?山柳氏)의 부용회(芙蓉會) ③의성김씨(義城金氏)의 청류회(靑流會) ④진성이씨(眞城李氏)의 동인회(同仁會) ⑤인동장씨(仁同張氏)의 인의회(仁義會) ⑥재령이씨(載寧李氏)의 자미회(紫薇會) ⑦전주류씨(全州柳氏)의 기산회(岐山會)


유종회(維宗會)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서흥김씨, 여강이씨, 풍산류씨가 만나 친목모임을 가졌다. 서흥김씨는 한훤당 김굉필 후손, 여강이씨는 회재 이언적의 후손(良佐會), 풍산류씨는 하회 입향조 류종혜 후손(芙蓉會)으로 구성되었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리는 영남에서 유학의 기틀이 마련되고 함께 성장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선조들의 정(情)과 세의(世誼)도 기리고자 했다. 이들은 참여하는 가문을 확대하고 매년 가문별로 상호방문 행사를 계획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서흥김씨가 문중 사정으로 더 이상 모임에 참가치 않는 아쉬움이 발생했다.


1980년. 유종회는 의성김씨 청계 김진 후손(靑流會), 진성이씨 송안군 이자수 후손(同仁會), 인동장씨 인동 향내 5파 후손(仁義會)이 가입해서 5개 단체의 모임으로 재출발했다. 1990년에는 재령이씨 영해파 운악 이함 후손(紫薇會)이 가입하고 2001년에는 전주류씨 수곡파(岐山會)가 승차함으로 7개 단체의 조합이 이뤄졌다.


유종회(維宗會)는 매년 유사(有司)가문을 정해 선현유적지를 심방(尋訪)하며 문중을 소개하고 선조들의 세의도 확인한다. 정기총회 땐 유종회헌장(維宗會憲章)을 낭독하면서 초심(初心)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 다잡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명문(名門)의 후손답게 위로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성(誠)을 다하고, 아래로는 후손들의 숭조정신의 깊은 뜻을 고취하는데 힘쓴다. 안으로는 조상의 유훈을 오늘에 조명하여 생활의 기조로 삼고, 밖으로는 조상의 유덕을 길이 선양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유종회(維宗會)의 지표이다.


[유종회의 구성]

유심회의 여강이씨는 범 여주이씨의 경주파이다. 1480년대 말에 이번(李蕃)이 양동으로 입향하여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분으로 불리는 아들 회재 이언적(李彦迪)에 의해 국반(國班)의 반열에 든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이언적은 『대학장구보유』를 저술하여 조선 유학의 흐름을 실천 중심의 『소학』에서 사유 중심의 『대학』으로 흘러가는 물꼬를 틔웠으며, 미완의 『중용구경연의』는 이후 학자들의 백과사전식 저술의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당시 사화(士禍)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경주지방 출신으로 좌찬성까지 올라 사후에 문원(文元)이라는 시호와 함께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선조의 삶에 누가 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여 후손 중에 40분이 문집을 남기고 57분이 유고를 남겼다. 현재 여강이씨들이 살고 있는 양동마을은 훌륭한 선조와 후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그 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초기에는 양좌회(良佐會)로 참석하다 2005년부터 유심회(惟心會)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용회(芙蓉會)의 풍산류씨는 하회마을 입향조인 류종혜 이후 관찰사 입암 류중영과 아들인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형제에 의해 명문가로 발돋움한다. 서애 류성룡이 1580년 상주목사를 지내면서 맺은 제자들로 인해 류성룡-정경세-류진-류원지-정도응-박손경-정종로-류심춘-류주목으로 이어진 퇴계학의 서애학맥을 형성했다. 이는 학봉학파와 더불어 퇴계학의 양대산맥을 이뤄 상호 경쟁하며 학문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신 분이 22분, 황각록(黃閣錄)에 오른 분이 2분, 문형록(文衡錄)에 오른 분이 1분, 호당록(湖堂錄)에 오른 분이 2분, 봉군(封君)을 받은 분이 6분, 봉조하(奉朝賀) 3분, 시호(諡號)를 받으신 분이 4분, 서원에 봉향되신 분이 13분이며 불천위로 제수된 선현은 6분이다. 그리고 유일(遺逸)로 관료의 길에 나선 분이 190분, 문집 및 유고를 남긴 분은 128분이다. 충효(忠孝)를 가훈으로 내세운 기풍을 바탕삼아 영남 남인으로는 드물게 벼슬과 학문에서 현달하신 선조가 많았다. 최근엔 집성촌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경사도 맞았다.


청류회(靑流會)의 의성김씨 내앞(川前)파는 안동 입향조 13世 거두(居斗)이후 풍산- 안기-신령등지를 거쳐서 17世 만근(萬근)이 내앞에 정착한 이래 600여년의 세거를 이루고 있다. 19世 청계 김진(金璡)은 자질들에게 “사람이 바른 도리로 죽을지언정 도를 굽혀 사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들이 君子가 되어 죽는다면 나는 살았다고 보고, 小人이 되어 산다면 나는 죽었다고 보겠다.”고 훈육하여 약봉 김극일, 귀봉 김수일, 운암 김명일, 학봉 김성일, 남악 김복일 등 아들 다섯을 과거에 급제시켜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불리게 하고, 후진들은 육부자(六父子)의 위패를 사빈서원에 모시고 있다. 특히 세인들은 “학봉은 퇴계 선사로 부터 도학연원을 수수하였다.”고 평하였다. 청계 후손들은 임진란 중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초유사, 경상좌·우도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의병을 지원 격려하고 관군과 조화를 이루게 한 학봉의 영향을 받아 서산 김흥락,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김우락과 김락 자매, 조선 3대 파락호로 위장한 여현 김용환 등 건국훈장을 수훈한 인물만도 50명으로, 남다른 자긍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의 명문가를 만들고 내앞마을에 경상북도독립기념관을 유치하여 독립운동의 성지(聖地)를 가꾸어 가는데 진력하고 있다.


동인회(同仁會)의 진성이씨는 진보 이촌(李村)에서 풍산 마애로 송안군이 이거한 이후로 주촌(두루), 마애, 온혜에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재 이우와 온계 이해, 퇴계 이황에 이르러 가문이 성장하였다. 특히 퇴계 이황은 남명 조식,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이다. 불천위로 제수된 선현은 9位이며 『송재선생문집』을 효시로 하여 『퇴계선생문집』 등 저술을 남긴 학자가 346분이고, 60분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명문이다. 이만도, 이만규, 이긍연, 이중린, 이중언, 이인화, 이필곤, 이육사 등 독립유공자 65분(독립장 2분, 애국장 14분, 애족장 33분, 포장 7분, 표창 9분)을 배출한 가문으로 집성촌인 예안 하계마을은 무려 2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성품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꼽는다. 인동장씨의 인의회(仁義會)의 인의(仁義)는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따 온 말이다. 仁(인)과 義(의) 孝悌忠信(효제충신)으로 인동에서 천년의 종기(宗基)를 이어왔다. 여헌 장현광(張顯光)은 인동장씨 가문이 배출한 대유학자로 서애 류성룡이 그의 학식에 감복하여 아들(袗)을 그의 문하에서 배우게 할 만큼 뛰어난 학자였다. 18세에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지어 대학자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장경우와 더불어 구미 동락서원에 배향되었다. 영남의 삼학자이자, 삼징사(三徵士)로 꼽힌 사미헌 장복추는 19세기 영남유학의 큰 선비로 이름을 남겼다. 가문의 기풍은 충절과 가학을 중시했다. 대과급제자는 인동 향내(鄕內) 5파 18분에 이른다.


자미회(紫薇會)의 재령이씨는 경주이씨(慶州李氏) 중시조 소판공 거명(居明)의 후손 이우칭(李禹?)이 고려조에서 보조공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을 지낸 후 재령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우칭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식읍으로 하사받은 고을 재령(載寧)을 본관으로 삼아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였다. 중시조이신 소봉(小鳳)은 공민왕의 부마로 순성보조공신에 오르고 상장군을 역임하였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가족과 더불어 밀양 서쪽 소음촌(召音村)으로 은거하였다. 영해 입향 선조이신 현령공 이애(李?)는 부제학 근재공 이맹현(李孟賢)의 여섯 번째 아들이고, 손자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의령현감을 지내신 운학(雲嶽) 이함(李涵)이며,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인 장계향(張桂香)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되니 이가 곧 여성군자로 칭송받으며 우리나라 최초 한글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신 정부인(貞夫人)이시다. 석계 이시명은 경당 장흥효의 수제자 이자 사위로서 설하의 7형제분이 모두 인품과 학식이 뛰어났으며, 그 중 특히 존재 이휘일과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 이현일, 항재 승일 그리고 갈암의 3자인 밀암 이재, 밀암의 외손자인 대산 이상정은 퇴계학맥을 이어받아 퇴계학문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역할과 공로를 인정받았다.


기산회의 전주류씨(岐山會)는 고려말 장령공 완산백 류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조선 초기부터 경화사족(京華士族)으로 대대로 한양에 거주하였고, 사환(仕宦)이 끊이지 않았으며, 낙남시조 인의 류윤선(柳潤善)은 처가인 영주에 이거 하였고 장남 사복시정(司僕寺正) 류성(柳城)이 의성김씨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사위가 되면서 무실에 정착하게(1560년경)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류성의 두 아들 중 장자 기봉 류복기는 분연히 몸을 일으켜 「신사하석(身死何惜)」(이 몸이 죽음을 어찌 아까워하겠는가!) 이라는 말을 남기고 「안동열읍 향병」을 창의하였다. 차남인 묵계 류복립은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여 순국하였다. 류복기는 아들 5형제 류우잠. 류득잠. 류지잠. 류수잠. 류의잠을 대동하고 창녕 화왕산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당시 류수잠은 13살, 五男 류의잠은 열 살의 어린 나이였다.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위국충정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2016년 기산충의원(岐山忠義院)을 준공하여 충의역사 체험장으로 활용하면서 후손들이 7의사(義士)의 향화를 이어오고 있다. 이후 동암 류장원, 호고와 류휘문, 정재 류치명, 서파 류필영 등 영남 학맥을 계승 발전시키는 우뚝한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문집을 남긴 분이 110여분, 420책 900여권 분량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불천위가 5位이며 근대에는 선각자 동산 류인식, 의병장 성남 류시연, 임시정부 국무위원 단주 류림, 하얼빈 의거 류기동, 네 분의 독립장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33인이 서훈을 받았다. 현재 420여년 세거하였던 무실 옛 고향은 임하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고, 종택, 기양서당과 일부 족친들은 산 중턱으로 이거 하였으며, 해평 일선리에 문화재 10여점을 이건(移建), 집단 이주하여 일가들이 정주(定住)하고 있다.


[끝맺음]

지난 2020년 계획되어 있던 유종회 총회가 코비드19의 대유행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금년 9월 25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萬松亭)에서 제 40회 유종회 정기총회를 풍산류씨 부용회(會長 柳時洪) 주최로 개최하게 되었다. 이날 행사는 회원뿐 아니라 정신문화 수도인 안동 각 단체의 많은 내외빈이 참석키로 예정되어 있으며 하회마을을 지키는 풍류가족 모두가 참석하여 유종회 회원들의 우정이 영원무구하기를 기원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선조들이 물려준 값진 전통을 계승하였고 선조들의 유구한 삶 속에는 다른 가문과 대대로 사귀어온 정의(情誼)가 스며있다. 오랜 선조의 역사이자 우리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가 함께 이끌어 가는 생활 속에서 상호간 유대를 더욱 굳게 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조직의 단합에도 힘써야 한다. 또한 전통사상의 장점은 서로 나누고, 민족정기와 자주의식을 수호하여 건전한 사회기풍의 조성과 향토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유종회(維宗會)는 조상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후손에게 전승해 가길 기원한다. 가문의 선현을 배우고 그들의 학행을 계승 발전시키며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신은 작은 촛불이 되어 내 자신을 비추고 우리의 지역사회를 밝히며 나아가 국가민족과 새로운 세계의 건설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구한 문화유산과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유종회(維宗會)는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류시홍(柳時洪) 제40대 유종회장(영천 현대서비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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