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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성수, "일제 치하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추념탑 이제 국가가 관리하자!" - 사이판 희생동포추념식 동행 취재기, 일제하에 희생된 사이판-티니안 조선…
  • 기사등록 2024-05-21 20: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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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투데이=장지수 기자]

[르포] 이성수

"일제 치하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추념탑 국가가 관리하자!"

사이판 희생동포 추념식 이성수 동행 취재기

일제하에 희생된 사이판-티니안 조선인

올해 45년 째 민간 동포에 의해 추념식

태평양전쟁때 한국인 등 148만3000명


▲ 북마리아나제도 연방 티니안 섬에서 18일(현지시각) 일제치하 강제 징용·노역으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 위령제에서 진혼 춤으로 영령을 위로하고 있는 세계문화예술센터 `고을` 정기옥 대표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 애독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되거나 노역, 위안부로 끌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영령을 위로하는 해외 추념 행사에 <영천투데이> 애독자(이성수, 경북 경산시)가 사이판 현지 동행 취재를 다녀왔다. (글 이성수, 정리 장지수 기자)


이번 제45회 해외희생동포추념행사는 (사)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회장 이용택) 주관으로 18일(현지 시각) 북마리아나제도 중 사이판과 티니안에서 각각 봉행됐다.


이날 오전과 오후 사이판과 티니에서 봉행 된 행사에는 Edwin Aldan 티니안 시장, 서원열 추념사업회 수석부회장, 임점금(90) 사이판 교민 원로, 성진호 목사, 김창열·주호준 등 교민, 세계 지역 문화예술센터 정기옥 대표, 현지인 등 50여 명이 함께해 영령들의 진혼을 달랬다.


추념행사의 이번 슬로건은 세계 지역 문화예술센터(대표 정기옥)에서 준비한 『공존 역사의 메아리, 인연』을 진혼 춤과 퍼포먼스로 엄숙하게 진행해 추모 의미를 승화시켰다.


북마리아나제도 연방은 면적 457.1㎢, 길이 560km, 인구 7만 3300명(2003년 기준)으로 구성된 미국 자치령(1978년)이다. 16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521년 포르투갈 탐험가(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후 오랫동안 스페인 통치를 받아오다 1899년~1914년 독일령, 1차세계대전 후 국제연맹(UN의 전신)의 인정 아래 일본이 점령하면서 태평양전쟁 때 일본의 군사기지화한 후 지금은 미국 속령(자치령)으로 되어있다.


사이판-티니안-로타 3개의 대표적 섬이 군도를 이루고 모든 지역에서 사탕수수·코프라가 생산되며, 1960년대부터 티니안섬 등에서는 젖소도 방목한다.


제1섬인 사이판은 울릉도의 1.6 배쯤 되는 115.4㎢의 면적으로 섬 중앙에는 높이 480m의 타포차우산이 불쑥 솟아있다.


▲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사탕수수 생산 수송에 사용했던 설탕 운반용 협궤기관차가 지금도 사이판 일본 신사에 전시돼 있다.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독자)


토양과 기후가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때문에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민간기업(남해개발 주식회사)을 내세워 사탕수수 생산 기지화했다. 지금도 사이판 일본 신사에 당시 일본이 사용했던 설탕 운반용 협궤기관차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이판을 지배한 일본은 이 사탕수수로 제당사업에 큰 경제적 이익을 올렸다. 설탕사업은 1930년대 중반 일제가 점령한 남태평약지역 수입의 60%를 차지할 정도다. 지금도 슈거킹 공원에는 당시 사탕수수 재배 농장을 만든 일본인 '마쓰에하루지'의 동상이 세워져 당시 공적을 기리고 있다.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며 목순까지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아픔의 역사이다.


이곳에 본격적으로 한국인이 대거 거주하게 된 것은 1919년 3. 1운동 전·후부터다. 일본 식민지 시대 당시 조선인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라는 일본의 꼬임에 당시 1917년 광주에서만 180명이 들어왔다. 바로 이곳 한인 1세대로 불린다.


3만여 명에 달했던 현지 조선인은 현재 8000~9000여 명 정도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있다고 현지인이 전한다.


일단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들어왔지만, 노역에 시달렸다. 사탕수수밭 하루 일당은 일본인해 비해 70배나 작았다. 현지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은 65센(전), 일본인은 45엔, 오키나와인운 40엔이 하루 일당이다. 조선인은 한 달 동안(30일) 급여로 치면 19엔 50센, 일본인은 무려 1350엔이다.


▲ 사이판에 세워진 태평양전쟁 한국인 추모 평화의 탑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 독자)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노역, 지원병, 종군 위안부로 동원된 수는 지원병 2만3000명, 징병 19만명, 군속 15만 명, 징용 112만 명 등 무려 148만 3000여 명에 이른다.


(사)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는 1977년 이곳 현지에서 우리 동포 희생자 유골 5000여 위를 모국의 천안시 소재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하기도 했다.


일본군 최후 사령부 건물 옆에 있는 태평양 한국인 위령평화탑은 사이판 북부 마피산(MountMarpi)에 위치한다. 1981년 지역 민간인에 의해 세워졌다. 


티니안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미 전폭기 B-29가 원자폭탄을 싣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향해 발진한 기지가 있는 곳이다.


이날 추념 행사는 오전 9시 사이판에서 오후에는 사이판에서 5인승 경비행기로 10분 거리인 티니안에서 순차적으로 봉행됐다. 이날로 사이판은 45회째, 티니안 추념식은 43회째다.


사이판 추도사에서 서원열 추념사업회 수석 부회장은 "우리는 이러한 굴욕과 치욕스러운 역사를 대부분 잊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로 이곳 사이판과 티니안은 우리의 자산과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고 강조하고 "生·死를 넘나든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 덕분에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다"며 아픈 추념사를 남겼다.


티니안 추념식에서는 세계문화예술 센터 '고을' 정기옥 대표가 진혼굿 춤으로 영령들을 위로했다.


▲ 추념 행사 후 세계문화예술 센터 관계자 등과의 기념사진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 독자)


이날 3박 4일 일정으로 해외희생동포추념행사를 동행 취재한 <영천투데이>독자 이성수(69, 경산시) 씨는 "우리 국가가 힘이 없을 때 민간(동포) 주도로 이같은 자연적 위령탑이 세워졌다"라면서 "이제 우리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할 때다"라고 전했다.


그는 "일본은 전쟁 후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미명하에 곳곳에 남은 전범의 흔적을 역사 유적지로 전시하고, 사이판에 신사(神社)를 만들어 자국민을 추모하기 위해 곳곳에 사찰과 위령비까지 세워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은 국외교포들이 사비를 들여 조촐하게 추념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교포들이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라며 동행 취재기를 전해왔다.


▲ 일본군 최후 사령부 옛터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 독자)



▲ 사이판에 세워진 태평양전쟁 한국인 추모 평화의 탑 건립기 (사진/이성수 영천투데이 독자)


<글 이성수, 정리 장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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